외교(外交):
대외적 주권을 수호하다

숙종 대는 서쪽으로 강화도, 남쪽으로 제주도, 북쪽으로 백두산, 동쪽으로 울릉도‧독도를 포함한 오늘날 한반도의 영역이 규정된 시기이다. 백두산을 경계로 하는 북방은 조‧청 관원들이 백두산에 정계비(定界碑)를 설치하여 그 이남 지역을 영토로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동쪽의 울릉도‧독도는 어부 안용복(安龍福)이 일본의 불법 어업을 방지하기 위해 도일(渡日)하여 일본 막부(幕府)로부터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받은 것을 계기로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연행사(燕行使)와 통신사(通信使)를 통해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파악하였다.

관방(關防):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숙종 연간 청에서는 삼번(三藩)의 난, 러시아 이주민과의 알바진 전투, 몽골 오이라트[厄鲁特] 준가르[準噶爾] 부족의 갈단[噶爾丹]과의 대치가 이어졌고, 조선 서해안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황당선(荒唐船)의 출현과 청 해적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숙종은 혹시 모를 위급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수도와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방어체제를 확립하였다.

애민(愛民):
민심을 위무하다

숙종 대는 현종 대에 이어 참혹한 을병대기근과 재해, 천연두와 같은 역병(疫病) 그리고 호환(虎患)이 산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숙종은 국가적 차원에서 ‘오랑캐’인 청으로부터 쌀을 수입하였고, 전국적으로 암행어사를 파견하였으며, 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내면서 이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아울러 민간에서는 전래해 온 구황(救荒) 관련 서적의 재보급이 활발해졌고, 중국에서 의약 및 보신(保身)과 관련된 서적이 수입되거나 정보가 유입되는 등 기근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