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政治):
정국의 전환을 주도하다
숙종 연간에 있었던 3차례의 환국(換局,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은 모두 숙종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서 단행된 것으로, 당시 왕권이 신권보다 강했음을 반증한다. 이 과정에서 신권은 상호 견제와 분열이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청남, 탁남, 노론, 소론으로 분화되어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숙종은 당파 사이의 정치적 대립과 분쟁을 종식시키고 국왕 중심의 국정 운영을 추진하기 위해 탕평 정치를 시도하고자 하였다.
제도(制度):
규범을 재정비하다
숙종은 환국을 주도한 노련한 군주일 뿐 아니라 제도의 정비에도 힘쓴 탁월한 정책가였다. 숙종 대에는 문물의 척도를 상징하는 국가 의례를 검토하며 조선식 의례를 마련하였으며, 법제의 정비 작업 결과 『전록통고(典錄通考)』를 편찬하여 조선의 법체계를 재확립하였다. 아울러 선대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재정 과제에도 착수하여 전국적으로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발행했으며, 양역변통과 양전(量田)을 단행하여 국가재정을 건실히 하고자 하였다.
사상(思想):
이(夷)를 벗어나 화(華)를 꿈꾸다
17세기 청이 중원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조선은 복수설치(復讎雪恥)를 명분으로 하는 북벌론(北伐論)이 내수외양론(內修外攘論)으로, 중화의 문물을 존숭하는 존주론(尊周論)이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으로 변모하였다. 그 가운데 대명의리론은 숙종 대에 이르러 대보단(大報壇)으로 형상화되었으며, 명의 역사를 기술하고, 명의 인물을 기리는 형태로 구체화되면서 조선인들의 관념에서나마 숭명배청(崇明排淸)적 태도를 견지하게 하는 동시에 조선중화주의가 강화되는 근거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