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一家)의
일원(一員), 숙종

조선 제19대 국왕인 숙종(肅宗)의 이름은 이순(李焞), 자는 명보(明普)로,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674년 8월에 즉위하여 재위 46년이 되는 1720년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하였다. 본 장은 숙종 자신, 현종(顯宗)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외아들, 3명의 정비와 6명의 후궁의 남편, 경종‧영조‧연령군의 아버지라는 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숙종 개인이 지닌 다양한 역할과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 구성되었다.

왕가(王家)의
왕손(王孫), 숙종

성리학적 세계질서가 지배하는 조선 왕실에서 원자(元子)이자 적장자(嫡長子)는 절대적인 지위가 부여되었다. 조선왕조 500년, 27명의 국왕 가운데 이에 해당하는 국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순종 정도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원자이자 적장자의 권위를 강력한 왕권 확립에 연계한 국왕은 단연 숙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숙종은 확고한 정통성을 왕실 운영의 정당성으로 환치하여, 왕가의 계통을 바로잡고, 억울한 왕실 인물을 복위시키며, 이를 반영한 계보를 간행 및 반포함으로써 왕권은 물론 왕실의 권위를 크게 향상시켰다.

조정(朝廷)의
군사(君師), 숙종

절대적인 정통성을 기반으로 즉위한 숙종은 혼란했던 예송논쟁(禮訟論爭)을 종식시키고 국정 운영의 파트너를 자의적으로 교체하는 환국(換局)을 단행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였다. 동시에 그는 붕당간 논쟁의 시비(是非)를 명변하여 탕평정치를 추구하였고,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과 같은 시대적 담론을 산림(山林)이 아닌 국왕이 장악하고 주도함으로써 조정 신료들의 국왕[君]이자 스승[師]이 되고자 하였다. 이로써 숙종 대는 전란으로 인해 폐허가 된 국가가 회복되어 조선 후기 중흥을 도모하는 기제가 마련되었다.

국가(國家)의
군주(君主), 숙종

숙종 연간 조선은 대외적으로 청나라와 한족(漢族)‧러시아‧외몽골과의 전쟁이 이어지고 서해안에 황당선(荒唐船)이 출몰하였으며, 대내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대기근과 재해, 역병(疫病) 그리고 호환(虎患)이 기승을 부렸다. 숙종은 외교를 통해 오늘날의 한반도 영역을 구축하고, 5군영 체제의 완비와 수도권 방어정책의 시행으로 국가적 안위를 담보하였으며, 다양한 구휼 방안을 추진해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조선은 숙종 대를 거치며 비로소 정치‧사회‧경제‧외교상의 안정기로 들어서게 되었고,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평가받는 영‧정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