祈雨祭謄錄
1832년(순조 32), 1책, 필사본, 33.6×27.1㎝, K2-2525
조선 후기 기우제祈雨祭, 기청제祈晴祭, 기곡대제祈穀大祭 등에 사용된 제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현전하는 『기우제등록』은 두 종류가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기우제등록』은 기우제의 설행 과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반면, 장서각 소장의 이 등록은 제향에 사용된 제문만을 등사한 것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였던 조선시대 최대의 적은 가뭄이었다. 논에 모를 심은 후 닥치는 봄 가뭄의 정도에 따라 한 해의 농사가 결정되었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보를 만들고 종자를 개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거행하였다.
조선 후기 기우제는 12단계로 정례화되었다. 1704년(숙종 30)에 정해진 12단계는, 삼각산·목멱산·한강(1차), 저자도·용산강(2차), 남단·우사단(3차), 북교·사직(4차), 종묘(5차), 삼각산·목멱산·한강(6차), 용산강·저자도(7차), 남단·우사단(8차), 북교·모화관(9차), 사직·경회루(10차), 종묘·춘당지(11차), 오방토룡제(12차)의 순서이다. 이 중에서 6차의 한강, 7차의 용산강과 저자도, 9~11차의 모화관지, 경회루지, 춘당지, 12차의 오방토룡제는 모두 용신龍神에게 비를 청하는 것이었다.
◈ 사진 4: 서울의 기우제장祈雨祭場
기우제 12제차(『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김정호金正浩 편, 1861년(철종 12), 22첩, 목판본, 29.8×19.7㎝, K2-4957)
차수 기우제 장소
1 삼각, 목멱, 한강
2 저자, 용산
3 남단, 우사단
4 북교, 사직
5 종묘
6 삼각, 목멱, 한강
7 용산, 저자
8 남단, 우사단
9 북교, 모화관
10 사직, 경회루
11 종묘, 춘당지
12 오방토룡제(종각(중앙), 선농단 옆(동), 양화도 근처(서), 한강가(남), 북교의 여단(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