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蠶儀軌
1767년(영조 43), 1책, 필사본, 44.6×32.4㎝, K2-2906, 보물 제1901-2호
1767년(영조 43)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경복궁의 옛터에 나아가 시행한 친잠親蠶 의식을 기록한 의궤이다. 친잠례는 국왕의 친경親耕 의식과 짝하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농상農桑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된 것이다.
이러한 친잠례는 1477년(성종 8) 3월 폐비 윤씨가 창덕궁에서 시행한 이래 1493년(성종 24)과 1504년(연산군 10), 1513년(중종 8), 1529년(중종 24), 1572년(선조 5), 1620년(광해군 12)에 시행되었다. 이후 한동안 시행되지 않다가 1767년 정순왕후에 의해서 시행되었고, 영조는 이때의 과정을 의궤로 남겼다. 정순왕후는 의식 하루 전에 내외명부와 함께 경복궁으로 가서 재숙齋宿하고 이튿날 아침에 의식을 준비하였다. 먼저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옛터 동편에 설치한 선잠단先蠶壇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올렸다. 그리고 채상단採桑壇으로 나아가 뽕잎을 땄다. 채상례採桑禮를 마친 다음에, 근정전으로 옮겨 세손과 백관이 왕과 왕후에게 하례賀禮를 드리고 교서를 반포하였다. 다음 날에는 친잠을 기념하여 문무과의 경잠과慶蠶科를 실시하였다.
◈ 사진 3, 4 선잠단(先蠶壇)과 채상단(採桑壇)
1767년 친잠례의 공간인 선잠단과 채상단의 그림이다. 영조는 친잠 예식의 장소를 경복궁으로 정하였다. 당시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원되지 못하고 공터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에서 친잠 의식을 거행한 것은 조선 전기 선왕들이 거행한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공간과 의식의 연속성을 통해 성왕의 정치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길쌈일을 처음으로 전하였다는 서릉씨西陵氏를 제사지내는 선잠단은 동교東郊(현재 서울시 성북구)에 상설 제단이 있었다. 그러나 왕후의 궁궐 밖 행차가 어려워 궁궐 내에 임시 단을 만들고 작헌례를 올렸다. 선잠단 서쪽 편에 왕후와 혜빈惠嬪이 사용할 채상단을 각각 만들었다. 두 채상단의 동쪽에 뽕나무가 있었다. 왕후가 채상단의 남쪽 계단으로 올라 동쪽에 있는 뽕나무에서 뽕잎을 땄다. 왕후가 5가지의 뽕잎을 따고 그치면 혜빈과 왕세손빈이 7가지의 뽕잎을 따고 그다음 내외명부의 여인들이 차례로 9가지의 뽕잎을 땄다.
◈ 사진 5, 6 갈고리[鉤]와 광주리[筐]
누에를 칠 때 사용하는 갈고리와 광주리의 그림이다. 왕비가 사용하는 갈고리는 가래나무로 만든 자루에 두석豆錫으로 만든 갈고리를 달았다. 혜빈궁과 세손빈, 내외명부가 사용할 갈고리는 숙동熟銅으로 만든 후 납으로 도금하였으며 가시나무 자루에 달았다. 이 갈고리로 딴 뽕잎을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담았다. 뽕잎 따는 것이 끝나면 잠실로 나아가 뽕잎을 잠모蠶母에게 주었다. 잠모가 뽕잎을 잘게 썰어 내명부에게 주면 이것을 누에에 뿌려 먹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