講書院日錄
박성원(朴聖源) 편, 1761년(영조 37), 4책, 필사본, 30.6×20.0㎝, K3-1
박성원이 정조가 왕세손으로 있을 때인 1759년(영조 35) 8월부터 1761년(영조 37) 12월까지 강서원의 진강 장소인 근독각謹獨閣에서 진행된 강의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강서원은 왕세손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던 관청으로 곧 세손강서원이다. 국왕의 재위 기간 중에 왕세손이 있었던 시기인 1448년(세종 30), 1649년(인조 27), 1751년(영조 27)에 각각 설치되었다.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청은 시강원이다.
서책을 진강한 날짜, 진강한 관원의 이름, 학습한 내용 순으로 기록하였다. 왕세손의 학습 진행 속도에 따라서 진강하되, 전날 배운 것을 복습하는 온강溫講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원강元講 순으로 진행되어 있다. 숙종의 『소학』 간행 이후 세자의 『소학』 강독은 세자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경종과 영조는 물론 효장세자와 사도세자도 모두 『소학』 강독을 통해 왕위 계승자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아래 번역은 세손 시절의 정조가 강학을 하는 모습이다. 이때에도 부지런히 『소학』 공부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소학』은 통상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계고稽古」를 내편으로, 「가언嘉言」, 「선행善行」을 외편으로 구분하는데, 당시 8세였던 정조는 내편은 이미 배웠고 외편을 새로 배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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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강: 『소학』 외편, 온강: 『소학』 내편
기묘년(1759, 영조 35) 8월 9일 박성원이 좌익선으로서 우종사 서명서徐命瑞와 함께 처음으로 왕세손을 들어가 보고, 근독각-이후의 강학은 이 전각에서 연속함-에서 강학하였다.
서명서가 아뢰기를, “이 익선은 평소 경학에 밝아 이번에 대조(大朝 영조)께서 특별히 오래토록 맡을 것을 명하셨으니, 진강하는 말을 필시 자세히 들으셔야 합니다.” 하였다. 세손이 전에 배운 대목을 외웠다. 이를 마치자 박성원이 새로 배울 대목을 읽었는데, ‘범노공질范魯公質’에서 ‘역력개가기歷歷皆可記’까지였다. 세손이 또 읽자 박성원이 구절마다 밝게 풀이하였다-이후의 원강은 모두 이 사례와 같이 함-.
이를 마치자 또 아뢰기를, “이 시의 어느 대목이 중요한 말이 아니겠습니까마는 ‘효도와 공손을 먼저 함만 같은 것이 없다[莫若先孝悌].’는 한 구절이 가장 필요하고 절실합니다. 자식으로서 어버이를 섬기고, 젊은이가 어른 섬기는 절목이 『소학』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