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술,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잇다

계술은 ‘계속하여 서술한다’는 뜻으로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잇고 선왕의 가르침과 유업을 계승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조는 어제를 통해서 자신의 뜻이 계술에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으며, 세손 또한 선대를 계술하여 왕도가 백세토록 드리우기를 희망하였다.


영조는 조선의 21대 국왕으로서 역대 조선 왕들의 어제를 모아 엮은 『열성어제』에 자신의 시문을 수록한 것을 비롯하여, 『영종대왕어제』, 『영종대왕어제속편』, 『영종대왕어제습유』, 『어제』 등의 어제 시문집을 남기면서 태조 이래로 지속되어 온 국왕의 어제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1745년에 지은 『어제상훈』과 1764년의 『어제조훈』 및 『어제경세편』 등에서는 선대의 행적과 가르침을 본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자와 후손에게 제왕의 도리를 경계하고 교훈으로 삼고자 하였다. 또 노년에 지은 어제첩류에서는 여비의 공역을 폐지하고 백성들의 토지세와 환곡이자를 탕감해 주는 등의 공적이 계술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조선 국왕의 선정을 모아놓은 『국조보감』 편찬을 지시하여 숙종 대 사업을 정리하였는데, 여기에도 계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성찰,
자성과 경계의 뜻을 담다

성찰은 영조의 어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이다. 자성(自省)으로 대변되는 영조의 성찰은 50대 이후 노년기로 갈수록 더욱 강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영조는 1746년에 유교 경전과 역사책 가운데 수신과 정사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선별한 뒤 이를 교훈으로 삼고 실천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어제자성편』이라고 이름하였다. 이후 1759년에는 『어제자성편』의 실천여부를 반성하면서 후손까지 경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어제속자성편』을 간행하기도 했다. 노년의 시문집인 『어제집경당편집』이나 『어제속집경당편집』에서는 추억과 추모를 통한 자성과 자면(自勉), 그리고 세손에 대한 훈계로 이어지는 내용이 다수 확인된다. 경전 독서를 바탕으로 자성과 경계의 뜻을 담아 지은 『어제경세문답』과 『어제독서록』에서도 같은 취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영조에게 성찰은 선대와 성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반성하고 면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손을 경계시키고 교육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소통, 감정을 술회하고 신민을 교화하다

영조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선대로부터 이어받고 자신이 갈고닦은 가르침을 신하와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감응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손수 지은 어제와 어필을 통해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술회하고 뜻과 의지를 내비추면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만인들과 공유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한 나라의 국왕이자 한 개인으로서 타인과 소통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재위 초기부터 노년기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영조의 명으로 1729년 중간된 『삼강행실도』와 1736년 간행된 『여사서』 등을 통해 백성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교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창의궁 양성헌에서 주강을 하며 신하들과 갱진한 시를 모아 엮은 『양성헌주강갱화시첩』과 역시 갱진시가 수록된 『속광국지경록』 등은 신료들과의 신뢰 및 소통 면모를 충실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조가 노년에 지어 신하들에게 반사한 어필시들은 영조 노년의 심사를 술회한 것으로서 백성과 신하들을 위하는 군주의 마음과 그가 지향한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