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漢誌
1745년(영조 20), 1책, 목판본, 34.1×20.4㎝, K2-4508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던 승려 성능性能이 서윤瑞胤에게 그 직책을 인계하며 산성과 관련한 일을 14조로 구분하여 1745년(영조 20)에 편찬한 책이다.
북한산성은 1711년 고려 시대의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축성된 산성이다. 성능은 발문에서 북한산성의 축조는 실로 숙종대왕에게서 나온 만세의 심원한 계획이라 하였다. 축성은 삼군문에서 나누어 진행하였는데, 수문부터 용암문까지는 훈련도감에서,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는 금위영에서, 수문부터 대남문까지는 어영청에서 각각 만들었다. 문 14곳, 장대 3곳을 비롯하여 유사시 어가를 북한산성으로 옮길 행궁을 건립하였다. 성능은 북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의 직책을 맡아 산성 안의 중흥사重興寺에 머물며 승려 370여 명과 함께 약 30년간 산성을 지켰던 인물이다.
〈북한도北漢圖〉 3장이 권두에 연이어 있는데, 북한산의 지세, 북한산성의 윤곽, 산성 내의 사찰·도로·창고·문루·장대將臺·창고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본문은 도리道里, 연혁, 산계山谿, 성지城池, 사실事實, 관원, 장교將校, 궁전, 사찰, 누관, 교량, 창름倉廩, 정계定界, 고적古蹟 등으로 구성되었다.
도리조에는 동으로 양주목까지 60리, 서로 고양군까지 30리, 남으로 경도까지 10리, 북으로 홍복산弘福山까지 20리 거리로, 이전에는 양주 소속이었다가 당시에 한성부로 이속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연혁조에는 고구려의 북한산군北漢山郡 이후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쌓았던 옛터에 산성을 쌓기까지의 내력이 소개되었다. 산계조에는 삼각산 및 인수봉·백운봉·만경봉 등 32개의 봉우리, 천룡강天龍岡 등 3개의 강岡, 의상대義相臺 등 8개의 대, 장춘동長春洞 등 11개의 동, 여기담女技潭 등 2개의 담, 국녕폭國寧瀑 등 2개의 폭포 위치와 이들에 관한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성지조에 의하면 산성은 둘레 7,620보에, 14문, 3장대, 143성곽, 26못, 9개의 우물이 있었다. 북한산성의 축조 과정이 기재된 사실조에 의하면, 북한산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하여 1659년(효종 10)에 왕이 송시열에게 명함으로써 산성 수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숙종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성 계획이 검토되고 1711년 2월에 비로소 축성이 결의된 후 공사는 4월에 시작되어 9월에 완료되었다. 정계조에는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관할 구역이, 고적조에는 옛 석성石城, 신혈사神穴寺, 최영 장군의 전적지, 민지閔漬의 유적에 얽힌 이야기들이 수록되었다.
수도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한 18세기 초 산성의 구조와 시설·축성 과정 등은 물론, 북한산성 내의 지형과 고적 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