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국등록』, 1784년(정조 8), 91책, 필사본, 31.8×23.3㎝, K2-3400
1784년(정조 8) 8월 17일 정조가 영릉永陵·공릉恭陵·순릉順陵에 거둥하였다가 고양군高陽郡에 묵고, 18일 환궁할 때 격쟁하며 상언한 것을 받아들였다. 이때 전라도 진도 출신의 한량인 박채영朴采永 등이 시위 행렬 밖에서 격쟁하였다. 정조는 받아들인 상언을 각각 관련 부서에 내려 다음 날인 19일에 초기草記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20일 형조에서는 한량 박채영 등의 사안에 대해 조사하여 회계回啓하였다.
한량 박채영 등의 사연은 훈련도감의 양향청糧餉廳 둔전 세금에 관한 것이었다. 진도에 있는 훈련도감 양향청 둔전에서 1복卜당 보리·조·기장·콩 등의 피곡皮穀을 100말을 납부했는데, 전임 둔장屯長 김익견金益堅이 양향청에 거짓으로 보고하여 피 잡곡 100말을 쌀로 쳐서 정미正米 40말로 정하였다. 둔장 김익견은 백성을 못살게 굴다가 순영巡營에 발각되어 형을 받고 유배되었다가 사망하였다. 그러나 정작 둔전 세금을 정미 40말로 내는 폐단은 폐지되지 않았으니 피 잡곡으로 세금을 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형조에서는 첫째, 이 사안은 격쟁 대상인 네 가지 사안에 해당하지 않고 둘째, 둔전의 세금 문제는 김익견이 폐단을 일으킬 당시에는 잠잠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격쟁한 것은 무엄하다는 근거를 들어서 이 사안은 논의하지 말자고 하였다. 또한 함부로 격쟁한 박채영은 법률을 적용하여 형을 시행하겠다고 하였다. 정조는 형조의 의견대로 둔전 세금 문제는 논의하지 않았으나 박채영은 석방하라고 처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