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臣講製節目
1781년(정조 5), 1책, 금속활자본(丁酉字), 35.2×22.4㎝, K2-2776
1781년(정조 5) 2월 정조의 명으로 초계문신抄啓文臣에게 강서講書와 제술製述을 부과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담은 책으로, ‘강’과 ‘제’를 따서 ‘강제절목’이라 하였다. 정조가 초계문신을 뽑아 교육하려는 것은 문풍文風 진작과 인재 양성을 위한 것이었다. 정조는 묘당에게 승문원에 분관되었던 참상·참하관으로 37세 이하의 문신을 선발하게 했으며, 『문신강제절목』은 규장각에서 만들어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계문신의 학업은 강서와 제술로, 초계문신이 자신의 전공을 정할 수 있다. 강서를 전공한 초계문신은 우선 경전으로 『대학』·『논어』·『맹자』·『중용』·『시전』·『서전』·『주역』 순으로 돌려가면서 익힌다. 경서를 끝낸 뒤에 『사기』를 강한다. 경서와 역사서를 읽는 것은 국정에 응용하기 위한 것이므로 문의文義를 정밀하게 익혀서 시험에 대비한다. 초계문신이 응시했던 책은 매달 말 문서로 정리하여 규장각으로 보내 입계入啓하게 한다. 시험은 매달 10일 이전과 15일 이후 두 차례 시행되는데, 두 차례의 강서 시험 점수를 합하여 1회의 과강課講이라 칭한다. 국왕이 친림하는 강서 시험은 규장각에서, 자체적인 강서 시험은 빈청에서 시행한다.
제술을 전공한 초계문신은 논論·책策·표表·배율排律·서序·기記 등 다양한 문체를 익혀야 한다. 규장각에서는 하루 전에 논·책 등의 시험문제를 기록하여 낙점받는다. 초계문신은 월과月課의 전례대로 집에서 작성하여 제출한다. 책문策文은 3일, 그 나머지 문체는 1일의 기한을 주었다. 제술 시험은 국왕이 친림하는 친시親試와 과시課試 2회를 치르는데, 친시는 매달 1일 규장각에서 시행한다.
정조는 재위하는 동안 10회에 걸쳐 초계문신 137명을 뽑았다. 초계문신 제도는 조선 전기에 시행되던 사가독서제의 전통을 이은 것이지만, 사가독서제보다 더 체계적이었다. 조선 국왕의 최대 관심사인 ‘엘리트 관료 양성’이 초계문신제로 그 명맥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