御製慶科
영조(英祖) 찬, 1773년(영조 49) ,1첩, 필사본, 32.0×18.5㎝, K4-1054
1773년(영조 49) 2월 5일 영조가 곧 있을 증광增廣 시험에 대해 읊은 어제시다. 1773년은 영조가 80세가 되고,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이해의 간지가 ‘계사’였는데, 부왕인 숙종이 즉위한 지 40년이 되던 해와 간지가 같았다. 영조는 1월에 부왕과 같은 간지의 해에 자신의 즉위 5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나이 80이 된 것과 즉위 50주년인 것을 축하하는 증광 시험을 개설하였다.
증광에는 문과, 무과, 생원진사시, 잡과 등 4종류의 시험이 모두 개설되었다. 영조는 시에서 증광 시험이 과폐科弊 없이 시행되기를 희망하였다. 증광 과거는 엄숙히 시행되어 문과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답안을 작성하는 차술借述이, 무과에는 대신 시험을 치르는 대술代述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문과는 공정해야 하고 사정私情이 개입되지 말아야 하니 과거 시험장에 사수寫手를 데리고 들어가서는 안 되고, 시권(답안지)이 공정하게 채점되기를 바랐다. 생원진사시도 잡스럽지 않게 진행되기를 바랐으며, 잡과는 깊이 탐구하여 설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영조는 과폐를 개혁하여 제술과 경학을 겸비한 서울과 지방의 선비들이 골고루 선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시에 고스란히 담았다.
영조는 2월 21일 덕유당德游堂에서 무과 초시 합격자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3월 22일에는 생원진사시 복시 합격자를, 2월 29일과 30일에는 문과초시 1소와 2소의 합격자를 친견하였다. 윤3월 12일에는 문과와 무과 전시가 설행되었다. 증광 과거에서 문과 60명, 무과 224명, 생원 100명, 진사 100명, 잡과 59명(역과 27명, 의과 11명, 음양과 15명, 율과 6명)이 선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