御製自歎五十年蕩平心
영조(英祖) 찬, 1772년(영조 48), 1첩, 필사본, 32.9×16.7㎝, K4-4189
영조가 1772년(영조 48) 7월 24일경 자신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도록 탕평에 힘썼으나, 여전히 파당을 짓는 일이 있는 것을 탄식하며 지은 글이다. 영조는 즉위하면서부터 ‘탕평’을 내세워 인사 정책에 형평을 유지하여 격심한 당파 간 경쟁을 완화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그런데 1772년 7월 노론 척신 김귀주·김관주, 노론 청류淸流 김치인·김상묵·구상·김종수·심이지 등이 청당淸黨·명당名黨·시체당時體黨이라 하면서 홍봉한과 반목한 일이 드러났다.
영조는 1772년 7월 23일에 숭정문에 나와서 신료들에게 교서를 반포하고, 다음 날 「자탄오십년탕평심」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교문을 보면, 영조는 10년 동안 탕평을 실시하여 상호 간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파당을 짓는 일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왕실의 두 외척 가문(홍봉한, 김귀주)이 도리어 파당을 짓고 반목한다는 사실에 깊이 실망하였다. 영조는 “노론이네, 소론이네, 남인이네, 소북이네 하는 자는 내 신하가 아니요 난역자니,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나에게 절하지 말고 나가라.”고까지 하였다.
마침 7월 26일이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기일이었기에 영조의 감정이 더욱 격앙되었던 것 같다. 어제에서 “아! 모레가 무슨 날인가! 내가 무슨 얼굴로 장차 전배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7월 26일 문소전에 전배하고, 영빈 이씨의 사당인 의열궁義烈宮에 나아갔다가 옛 거처인 창의궁으로 갔다. 그는 창의궁에서 편당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만 명첩名帖을 바치게 하고 청당·명당·시체당 등에 연루되었던 이들을 처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