御定四部手圈
정조(正祖) 편, 1801년(순조 1), 25권 12책, 목판본, 30.8×19.5㎝, K3-651
1797년(정조 21) 10월부터 1798년(정조 22) 10월에 이르는 187일 동안 정조가 읽은 총 1,690여 편의 책에서 국왕이 경계로 삼아야 할 4,670여 단락의 문장을 절록節錄한 것이다. 1798년에 30권의 필사본으로 완성되었고, 1801년(순조 1)에 25권 12책의 목판본 『어정사부수권』이 간행되었다.
수권手圈이란 손으로 동그라미를 친다는 뜻으로, 글을 읽어 나가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대목에 주로 붉은 먹으로 점을 찍거나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다. 정조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의 글을 두루 읽으면서 의미 있는 부분을 초록하였는데, 이 역시 선대를 우러러 계술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사부수권’은 경부인 『삼례수권三禮手圈』, 사부인 『양경수권兩京手圈』, 자부인 『오자수권五子手圈』, 집부인 『육고수권陸稿手圈』과 『팔가수권八家手圈』을 통칭한 말이다. 『삼례수권』은 『의례』·『주례』·『예기』에서, 『양경수권』은 『사기』·『한서』·『후한서』에서, 『오자수권』은 주돈이·정호·정이·장재·주희의 문장에서, 『육고수권』은 육지陸贄의 주의奏議에서, 『팔가수권』은 당송팔대가의 문장에서 채록하였다.
이 책은 각 수권 앞에 수록된 ‘과정일표課程日表’를 통해 해당 서적을 초록·권점한 후에 교열을 거쳐 선사繕寫에 이르렀던 과정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근사록』의 체재를 따라 방대한 전적의 요점을 정리하여 경사자집의 정수를 집대성함으로써 군사君師를 자임하며 대일통大一統을 추구한 정조의 학문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정조는 수권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육선공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면서 아침저녁 떠오르는 생각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다시 팔대가의 글과 육선공의 문집 중에서 직접 추려 내어 오늘 한 번 본 곳에 하나의 비점批點을 찍고, 내일 두 번째로 볼 때에는 다시 관주貫珠를 치고, 그 뒤에 다시 자세히 살펴본 후, 신하들과 토론하며 당부當否를 취사取捨하였다. 그런 뒤에 또 한 번 자세히 살펴본 다음 다시 1부의 책자를 만들어서 『팔가수권八家手圈』이라 이름하고 『육고수권陸稿手圈』이라 이름하였으니, 대체로 직접 모아서 편집했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일찍이 야사野史를 보니 영릉(英陵 세종) 때 구양수歐陽脩와 소식蘇軾의 수간手柬을 편람便覽했다는 말이 있던데, 지금 ‘수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우러러 계술繼述하려는 뜻이다. 근래에는 『주자서朱子書』를 편집하고자 하여 먼저 그중 뛰어난 편을 고르고 암송할 만한 구절을 뽑아서 함께 ‘수권’이라고 이름 붙여서 편집하고자 한다.” 『일성록』, 정조 22년 4월 19일.